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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박수근 그림을 보고(995)
작성자 풀솜대 작성일 2017.09.26
첨부파일
내용
지난 칠월 마직 날 박수근 그림전 관람후 감상을 적었어요. 그냥 놔두었다가 감상을 나누고 싶어 이곳에 올려봅니다.

박수근 그림을 보고...

칠월 마지막 날 무작정 경주로 갔다.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만 삼복더위 칠월에 마침표를 찍을거 같아서였다. 길을 걸으면 햇빛과 지열에 숨이 가빠오고 그늘에 들어서면 금세 땀이 식는다. 햇빛과 그늘로 몸의 균형을 잘 맞추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은 무얼까?

문득 며칠 전 신문에서 읽은 박수근 그림전이 생각났다. 경주엑스포에서 그림이 전시된다는 내용이었다. 보문단지 내 자전거타기를 하려다 그만두고 엑스포건물로 갔다. 차를 주차하고 메인 건물로 가는 동안에도 땀이 비오듯 한다. 티켓을 구매하려는데 안내원이 애매한 얼굴로 솔거미술관으로 가라고 한다.
"어딘데요?"
" 문 밖으로 나가 화살표 방향을 따라 쭉 가면 됩니다."
다시 문밖으로 나가라는 말에 다리 힘이 풀린다. 더위가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화살표가 상어 입만큼 큰 크기로 산을 향해 있다. 거기다 계단까지 턱 버티고 있는게 아닌가.

다른 화가의 그림이라면 발길을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당대의 최고 그림을 코 앞에두고 물러서고 싶진 않았다. 다행히 계단오르는 구간에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운다. 지그재그 올라가는 내내 솔향기 가득하다. 아하 솔거미술관은 냄새까지도 소나무를 품고 있구나.

먼저 영상관에 들러 화가의 일생과 그림 해설을 접했다. 1914~1965년 생몰년대를 보면 51세의 삶이 전부다. 거기다 그림 그린 기간은 십년 정도밖에 안된다. 그럼에도 많은 양의 작품이 남겨져 있고 역대 최고가를 갱신한 그림값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가난하여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생계형 생활을 했어야만 했고, 육이오 당시 남한으로 내려와 풀뿌리처럼 겨우 뿌리를 내리고 그림을 그렸는데 말이다. 경이로운 것은 배움이 짧고 지연도 없고 가난이 지속된 상태에서 그림이 그려졌음에도 그의 그림을 보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두 여인이든 소금파는 여인이든 나무와 두 여인이든 빨래터 여인이든 그림에 등장한 여인들은 모두가 움직임의 몸짓이 있다. 그 움직임에는 삶이 목숨인 단순함이 있다. 그야말로 군더더기 없는 생의 호흡만 느껴진다. 여인이어서 볼 수 있는 미소마저도 사치다. 그런데 비장함보다 평화로움이 느껴지 건 왜 일까? 이율배반이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 유년의 그리움 속에 달려있는 엄마 아버지 오라버니 일찍 죽은 친구 여름 개울가 봄 들판 가을 단풍 겨울 눈 덮인 초가집 고드름까지 감자 덩굴처럼 줄줄이 엮어 올라온다.

그의 그림은 동심의 뒷 면에 그늘져 얼어있던 어릴적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회한을 강제로 소환하여 맨정신으로 들여다 보게한다. 엄마 주머니에 있던 십원짜리 동전을 훔친 일, 땅 바닥에 있던 씹었던 껌 씻어서 다시 입에 넣었던 일, 고등학생이던 큰오빠가 담배꽁초 주워오면 십원 주겠다는 말에 담배공초 주으러 다니던 일...그래 그런 시절이 저기 그림 속에 숨어 있다.

내 눈을 특별히 끈 그림은 나무와 여인이다. 나무에 나무잎 하나 없고 가지만 힝차게 뻗어있다. 가지는 앞으로도 옆으로 아닌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그 앞을 여인이 무심히 지나고 있다. 나무에게 곁눈도 주지않고 씩씩하게 앞만 보고 간다. 둘 다 서로에게 무심하다. 그런데도 나무와 여인은 오래 사귀어 말 안해도 알 수 있는 벗처럼 다정해 보인다. 그래 지금은 나뭇잎 다 떨어져 그늘을 줄 수 없지만 내 힘찬 가지 보이지? 조금만 참게. 여인은 그 침묵의 말을 믿고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향하고있다.

양구에 있는 박수근미술관에서 이곳 솔거미술관에 그의그림을 전시한 것은 단지 그림을 전시한다는 것 말고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가 경주에서 신라시대 문화유적을 탁본한 것이 600여점에 달한다고 한다. 화가가 그림만 그린것이 아니라 집중하고 몰입해서 탁본을 하고 종내는 마티에르라는 그림기법까지 개발해서 작품에 도입했다는 것은 어떤 배경을 가져서일까? 해설에는 그가 고향에서 어릴적 그림그리기 연습이 바위나 땅 같은데서 많이 이루졌을것으로 추정한다..따라서 돌에 대한 질감이 체득되었기 때문에 화강암에 새겨진 불보살. 꽃 문양, 전설 속 동물들의 탁본에 더욱 심취했을 것이라한다. 그러면서 느껴졌을 돌의 질감을 그림에 고스란히 드러냈다. 화면이 도톨도톨해 보인다. 굳이 힘든 작업을 해서 돌의 질감을 나타내고자한 것은 왜일까?

1970년대 소련의 시인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이 고국에서 추방 당하여 미국과 캐나다 접경지역에 자신의 고향과 유사한 곳에 터전을 잡고 결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박수근 역시 고향의 체취를 모든 그림에 담고자 한건 아닐까. 고향의 흙, 흙은 생산의 어머니, 모성의 원천 아닌가. 그의 그림에는 어머니의 체취가 느껴진다. 그래서 직선의 그림 같은데 둥글고 아득한 마지막 방점 같은 안도가 느껴지나보다.

갑자기 바램이 생겼다. 지난 유월 체코 체스키프롬로프를 방문했다. 중세도시 작은 마을에 클림튼을 흠모했던 요절한 화가 에곤실레 전시관이 있었다. 단지 그의 외가가 있었다는 이유로 초기 그림 몇점과 사진 몇 점이 있다. 그럼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었다.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그의 흔적을 기리는 작은 마을의 열린 마음이 부러웠다.
경주에 머물렀던 박수근 자취를 샅샅이 찿아서 그의 흔적을 오래 보전하고 경주를 찿는 이들에게 보여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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