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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종이, 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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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종이, 붓

  • 기간2022.12.22 ~ 2023.07.09
  • 장소박대성 전시관 1~3전시실
  • 작가노은님
  • 작품서양화 59점 사진 22점 공예 20점 미디어아트 2점 기타 4점
  • 주최/주관경상북도, 경주시, (재)문화엑스포

전시서문

  • 	나, 종이, 붓
    	
    	 
    	내 화실에는 고요함으로 가득 차 있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은 내 앞에 서 있다
    	모든 것이 잡힐 듯이 가까이 느끼지만 아주 멀다
    	 
    	화실에 들어올 때마다
    	사람들이 살다 버리고 떠난 섬에 온 것처럼
    	모든 것이 텅 비어 외롭다
    	 
    	내가 그림을 그리려 할 때마다
    	빈 종이가 나를 두렵게 한다
    	떠오름이 없어 벌받는 사람처럼 고생한다
    	 
    	나 또한 찾을 것이 없다
    	얼마 후 이런 고생 끝에
    	내 속에 있는 장난기가 슬슬 풀어져나온다
    	 
    	이럴 때면 나는 밀림 속 타잔처럼 느끼며
    	투우 싸움장에 있는 것 같고,
    	가끔은 상처받은 부상병처럼 느낀다
    	때론 긴 악몽에서 헤매는 것 같다
    	 
    	가을 들판을 파헤치며 사는 두더지 같고
    	신들려 춤추는 무당처럼 느끼며
    	뭔가에 잔뜩 붙잡혀 있다
    	 
    	나는 어느새
    	정신없이 어떤 사랑에 푹 빠져 있고
    	구름처럼 외로이 떠돈다
    	 
    	때로는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처럼
    	때로는 계속 임신한 여자처럼 느끼며
    	때로는 배가 고파 먹이를 찾아 헤매는 날짐승처럼 느낀다
    	 
    	나, 종이, 붓
    	우리 모두가 지쳐 있다
    	 
    	내가 어디서 무슨 짓을 했는지
    	나도 모른다
    	 
    	- 노은님, 2003